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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장관 후보자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홍범도 장군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신 분으로, 독립유공자로서 예우받아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설립과 관련해서도, 

"이승만 대옹령의 경우에는 독립유공자 이면서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분"이라며 "있는 그대로의 그 분의 공을 인정해야할 것이고 흠결이 있으면 흠결을 이야기해야한다"며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숙명여대 총장을 역임한 경영 전문가로, 

6.25 참전용사의 딸이자 독립운동가 권준 장군의 손자 며느리이기도 합니다. 

 

 

 

 

강정애 장관 후보자 약력, 고향, 가족정보 알아보기 

 

 

권준 장군 흉상
백인 권준장군 모습 및 대구 상리공원 내 흉상 , 권준 장관의 묘소 (현충원)

 

특히 시할아버지인 백인 권준 선생은, 일제감정기에 약산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을 결성하여 

활동자금 관리 등 핵심역할을 담당하기도 했고, 2010년 9월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는 이러한 권준 선생의 넋을 기려 대구 상리공원에 권준선생을 기념하는 흉상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강정애 장관 시할아버지 독립운동가 권준 장군 알아보기  

 

 

 

 

 

 [홍범도 장군 논란] 정리

 

 

 

홍범도(1868~1943)는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으로,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에 투신해 한일합병 이후 연해주와 중국에서 활동했고,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21년 러시아로 본거지를 옮겨 1937년엔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에 정착했습니다. 말년에는 한인 극장의 수위로 일하며 힘겹게 삶을 유지하며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국방부가 지난 8월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 내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독립군 지도자로서의 삶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는 우리 독립군이 일본군으로부터 거둔 첫 공식 승리고, 

같은 해 10월 청산리 대첩 역시 독립군 최대 전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두 전투에 모두 참여한 인사가 바로 홍범도 장군입니다. 

 

자유시 참변과 공산당 가입 전력

 

자유시 참변은 1921년 간도와 연해주, 사할린에서 자유시로 집결한 독립군 100여명이 희생된 것을 뜻합니다.

이 당시 독립군은 상하이파, 이르쿠츠파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르쿠츠파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다만 반론으로는 홍범도장군은 이 참변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지속적으로 공산당에 요구했고, 지속해서 

공산당에서 벗어나고 싶은 의사를 피력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삶 역시 카자흐스탄에서 한인으로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국에는 2021년 8월 15일에서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재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왜 카자흐스탄까지 갔고 왜 이제 돌아왔나  > 기사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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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장군 영결식 _ 출저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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